제목: 정기검진

원고 2010. 11. 12. 03:37 Posted by 오미크론2

  "… 평균치보다 혈압이 쪼오금 높으시네요? 많이 높은 건 아니니깐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요, 다만! 짠 음식, 기름진 음식 좀 피해주시면 되요. 간 기능은 정상인데… 아하! 지방간! 작년보다 좀 더 진행이 된 걸로 나왔어요. 이건 좀 주의하셔야 되요. 음식물 먹은 게 다 소비되지 않고 쌓이는 데 이게 간에 지금 붙어있는 거라 보시면 되거든요. 요거 나중에 간수치가 안 좋아지면 간경화로 갈수도 있고요, 비만까지 겹치면 당뇨, 고혈압, … 아~주 골치 아파질 수 있어요. 뭐, 별거 없어요. 음식물 줄이고 운동 많이 하고. 아시죠? 유산소운동. 가벼운 조깅, 속보, 수영, 등산, 자전거 타기! 줄넘기! 요런 거 꾸준히 해주시면 되요. 숨 야악간 찰 정도로 매일 30분씩. 알겠죠? 육류, 튀김요리, 내장요리, 새우! 오징어! 이런 거 피하시고 잡곡, 야채, 해조류 뭐 이런 거 주로 드시고. 물이랑 채소 빼곤 다~ 남는 영양소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거예요. 위염이 약간 있네요? 이거 작년에도 나왔던 건데…"

  다소 묵직한 톤의 남자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쉴새없이 쏟아진다. 운동 종류, 음식 종류 나열할 때는 리드미컬하게 박자까지 타는 거 같다. 이해는 간다. 건강검진 결과라는 게 천차만별일 리는 없고, 대충 비슷한 나이 또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테니, 앉아서 하루 종일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다보면 자연히 쫑알대는 것처럼 들릴 게다. 그렇지만 건강검진센터 상담 직원의 수다에 신경이 집중되고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건강에 대한 조언이니까.


  쪼그려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면 잠시동안 주변이 별천지처럼 반짝거린다. 눈 한쪽은 시력이 예전같지 않은 게 초점이 흐릿하다. 어깨랑 뒷목은 뻐근함을 달고 살고, 퇴근 길 막차 놓칠세라 계단 좀 뛰어오르면 그새 숨이 차오르고 무릎이 찌릿거린다. 하지만 그 뿐이다. 나타나는 '증상'들은 있지만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누가 일러주지 않는 한 알 도리가 없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글쎄, 그건 요단강 건널 채비하고 '오늘 아니면 내일'하고 계신 어르신들 얘기다. 엊그제 멀쩡히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오늘 급성간염으로 병원 신세지는 게 우리다. 그만큼 모른다.


  건강검진이란 게 그렇다. 살 좀 빼야지 운동 좀 해야지, 평소엔 그저 아쉬운 소망 정도에 그치던 것들이 당장 아주 구체적인 목표로 정리된다. 지금의 내 몸이 어떤 상태이고 이대로 쭈욱 간다면 어떤 상태를 맞게 되는지 또렷한 그림을 그려준다. 위험한 사태를 막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극단적인 표현은 세련되게 피하면서도 또박또박 할 일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잘 안다 자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그렇다고 뭐 딱히 남이 더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 신앙의 정기 검진이 있다면 참 좋겠다. 내 신앙에 뭐가 부족한지 딱 꼬집어 주고 뭘 어떻게 하면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그런 검진 말이다. 뭘 조심하고 뭘 피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는 그런 안내 말이다.


  "… 평균치보다 찬양 지수가 쪼오금 떨어지네요? 많이 부족한 건 아니니깐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요, 다만! 짜증내고 화내고 욱하고 뭐 이런 거 피해주시면서 짬짬이 흥얼흥얼 곡조 있는 기도, 아시죠? 구속사 이해 지수는 정상인데… 아하! 성경읽기! 작년 보다 좀더 떨어진 걸로 나왔어요. 이건 좀 주의하셔야 되요. 산수가 약한데 수학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요거 나중에 구속사 시리즈 계속 출간되면 아무리 읽어도 뭔 얘긴지 모르게 되면서 아~주 골치 아파질 수 있어요. 기도 지수 괜찮고, 어디 보자, 성도 간의 교제 지수도 그럭저럭 … 헌데! 아, 이게 친한 사람들 쪽에만 몰려 있네. 교회 새로 오신 분들도 부단히 챙겨주는 거, 이게 중요하거든요. 직장 쪽을 좀 볼까요? 음, "아무개 씨도 교회 다녀?"란 얘길 올해에만 열 번 이상 들으셨네요? 요거 좀 줄여주실 필요 있겠고요. 뭐, 별거 없어요. 교회에서 하던 것처럼 직장에서도 신실하려고 노력하고 성격 좀 죽이고! 겸손하고 화목하고! 동료들 온화하게 대하고! 뭐 그런 것들 꾸준히 해주시면 되거든요. 성도가 은혜를 끼쳐야죠, 주변에, 그죠? 그리고 보자… 헌금이나 십일조는 정확히 하셨네요. 그런데, 아하! 감사가 부족했어요.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봉헌할 때 감사하는 마음은 챙겨주셔야 되죠. 봉사는, 어디 보자, 보름 전에 평강의 가게가 열렸는데 … 여기저기 빠릿빠릿하게 많이 일하셨어요. 요런 거 참 좋은데, 아! 초소 봉사는 좀 약하시네요, 그죠? 게다가 성전 청소, 주일 배식! 분리 수거! 평소에 봉사가 꾸준하게 이어지진 않았어요, 알고 계시죠? 이런 거 꾸준히 해주시는 게 공력에 차암 보탬이 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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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0 칼럼 원고

원고 2010. 7. 8. 11:22 Posted by 오미크론2

제목: 어떻게 기르오며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주일 2부 예배 시간, 사무엘 성전 뒤편은 아이들 박람회장입니다. 다양한 개월 수, 생김새와 성격도 제각각인 영유아들이 예배에 집중하려는 엄마 아빠의 긴장을 잠시도 늦출 새 없게 만듭니다. ‘경건한 예배를 위해, 보채는 얼라들은 성전 밖에서 다스려 주십사’는 안내 자막이 뜨면 유난히 크게 들리던 어느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제서야 잦아듭니다. 성전 밖은 숫제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삼삼오오 모여 딱지를 치고, 공을 던져 받고, 비눗방울을 불어댑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머리가 띵해질 만큼 무더운 한낮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해맑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피어납니다.


  반면, 세상은 참 험합니다. 연일 매스컴에서도 보이듯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는 끊이질 않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는 6,300여 건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건 신고 건수요, 실제로는 더 많은 범죄가 있었겠지요. 우리가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오늘 하루 동안에도 이 땅의 어딘가에서 17명 이상의 아동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현실입니다. 그딴 놈들은 화학적 거세 따위의 자비로운 방법이 아니라 오장을 발라내고 사지를 토막 내어 서울광장 한복판에 효수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시던 지하철의 어느 어르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몇 주 전엔가, 예배 시간에 찡찡거리는 둘째를 재우려 성전 밖으로 나갔더랬습니다. 퀵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안면 익은 아이들과 몇 마디 얘길 나누다가 “모르는 어떤 삼촌이, ‘아빠 친구인데 아빠가 너 데려오래’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물어봤었지요. 문자 그대로 ‘뭘 어쩌란 말이냐’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상대로 일장 연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성도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가끔은 혹 방임을 덮어두기 위한 자위는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전적인 신뢰의 출발점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아닐까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부모의 심경에 참 많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아내/남편과의 결속과는 또 다른 성격의 강한 결속이 생깁니다. 회사 게시판에 [펌글]이라는 머리글로 올라온 부모 자식 간 감동스토리라도 하나 읽고 나면 집에 있을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가슴 한가운데가 저릿하며 짠해오는 게 예전과는 참 다른 느낌입니다. 오죽하면 영화 '크로싱'을 보다가 급기야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던 적도 있었네요. (가족의 약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와, 그를 찾아 나선 어린 아들의 안타까운 엇갈림을 그린 영화입니다. 자식 때문에 속 썩을 때 보시면 즉효입니다)


  자녀를 통해 부모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내 부모님의 이런 모습만은 내 자녀에게 보이지 않으리라 꼭꼭 다짐했던 그 무언가를 어느 순간 내가 내 자녀에게 보이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패인 나와 내 부모님 간의 감정의 골을, 내 자녀와 나 사이에서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나 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녀는 부모를 닮아갑니다. 유전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겠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살면서 보고 듣는 데로 닮아가는 면이 더 클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따라하며 닮아가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닙니다.

  죽지 않고 승천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의 아들 므두셀라가 태어난 시점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설교말씀처럼 마누라에 자식새끼 키우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좀 어려웠겠냐며 에녹의 독한 신앙을 되새길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에녹은 ‘자녀’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깨달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좀 과장하면 에녹은 자녀가 태어난 바로 그 때부터 개과천선한 셈입니다. 그런 뜻에서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표현은 꽤나 적절합니다. 신앙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로또 같은 존재니까요.


  공부에도 왕도가 없듯이 육아에도 정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삼손이 태어나리라는 예언을 들은 그의 아비 마노아는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삿13:12)”라고 물었다죠. 우리도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자녀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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