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은 총알은 없다

원고 2014. 1. 16. 01:59 Posted by 오미크론2

노동 집약 산업, 소프트웨어 개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프로그래머는 천재나 오타쿠, 혹은 그 중간 어디쯤으로 그려지곤 하는 반면 현실 세계에서는 열에 아홉이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들 업무의 상당 부분은 소프트웨어 설계와 코딩인데 이 과정이 흡사 건축과 비슷하다. 무엇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에 대한 설계가 있고, 이를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에 맞추어 하나하나 작성하여 붙이고 모아 쌓는 식으로 최종 결과물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소스 코드(source code)라고 부른다. PC나 스마트폰 같은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작성되다 보니 그 분량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경우가 많다. 아이폰의 인터넷 어플(Safari)로 예를 들자면 핵심 모듈을 이루는 소스 코드의 분량만 무려 400만 라인이 넘는다. 문서 출력하듯이 셈해보면 A4용지로 40만 페이지이다. 매 줄 각 단어가 허투루 쓰인 것 없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 구조의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 다양한 기능, 더 발전된 성능에 대한 요구는 늘어만 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증가하지만 원래 이 동네가 복잡성을 타고난 지라 숨 돌리며 일할 여유가 없다. 개발 효율을 높이고자 온갖 시도들이 동원됨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야근이요 옵션은 휴일 근무이다. 지식 집약 산업일 것 같은 겉보기와 달리 은근히 이거, 노동 집약 산업이다.


Silver Bullet

원래 ‘은 총알(Silver Bullet)’은 묘책이나 특효약을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프레더릭 브룩스(Frederick Brooks)가 1987년 “은 총알은 없다(No Silver Bullet)”라는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IT 업계에서는 제법 고전으로 취급받는 용어인데 이 글에서 브룩스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생산성을 단번에 해결해 줄 만한 은 총알 같은 기술이나 개발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룬 내용이라 이 지면에서 자세하게 풀어내는 것은 곤란하지만 결론만큼은 곱씹어 볼만하다. 즉,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일이니 괜히 만병통치약 같은 ‘한 방’을 기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살다 보면 난마같이 얽힌 고민을 마주할 때가 있다. 생각지도 못 했던 결정적 ‘한 방’이 어디로부턴가 날아와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주길 꿈꾸기도 한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매주 복권 가게를 찾는 사람들 상당수도 ‘한 방’에 대한 기대가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에서는 혹 그런 면이 없을까?


신앙의 은 총알을 찾아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내 신앙은 제자리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한때 다른 이들에게 신앙의 롤모델이라 인정받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저 하나 앞가림하기 급급한 사람도 있다. 처음 접한 말씀의 신세계에 홀딱 빠져 장성한 신앙을 격하게 흠모하는 사람도 있다. 신앙의 일취월장을 이루어 이들을 만족하게 할 은 총알은 과연 있을까? 나아가, 요셉 10배 부흥을 눈앞에 가져다줄 은 총알은 과연 존재할까?

2014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다짐한 ‘요셉 신앙 작정식’. 그 작정서에 올려진 항목들은 모두 알 만한 것들이었다. 예배와 말씀, 기도와 봉사 그리고 전도. 교회 좀 다녀본 사람 치고 모를 만한 아이템들이 아니다. 참 뻔하다. 그런데 신앙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기본적인 것들을 어쩌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쉼 없이 이어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폭풍 같은 격정의 은혜가 찾아왔을 때 이를 날려먹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은 기본기의 부단한 반복에서 비롯된다. 시련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도 결국엔 오롯이 믿음을 지켜내는 힘도 여기에 근거한다. 작정했던 것들을 하루하루 점검하며 반성과 다짐을 반복하는 와중에 우리의 신앙은 단단해져간다. 파송의 소감을 이야기할 때 요셉에서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목메어하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켜켜이 쌓인 커다란 신앙의 공력을 본다. 당장의 실효를 거두는 은 총알이 없이도 요셉의 가지는 담을 넘어 무성해질 것을 느낀다.

새해도 벌써 보름을 넘겼다. 공연히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지름길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어 기본기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맺어가자. 신앙에도, 은 총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