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11029: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원고 2011. 10. 27. 14:27 Posted by 오미크론2

  흑묘백묘(黑猫白猫)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의 주장으로 유명해진 말이지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의 빛깔과 상관없이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게 제일이라는 의미로서 1980년대 중국식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용어입니다. 실제로 덩샤오핑의 이러한 개혁·개방정책은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끌어냈고 지금의 중국은 미국에 이에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남쪽으로 오르든 북쪽으로 오르든 산 꼭대기에만 오르면 그만이듯, 검은 고양이냐 흰 고양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고양이의 역할이 쥐를 잡는 것이라면 가장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장땡이겠지요. 그 고양이의 비쥬얼이 깔끔한지 추레한지, 재산이 얼마인지 빚이 얼마인지는 부수적인 요소입니다. 윤리 선생님을 뽑는 것도 아니고 전쟁에 투입할 야전 사령관을 선출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비유컨대 고양이에 대한 평가는 그 고양이의 정책과 비전, 행정능력에 근거해야 할 것입니다. 배우자 고양이가 어떤지 부모 고양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따위는 아무리 고양이의 가치관 판단을 위한 참고용이라 해도 여성월간지 가십거리 기사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러한 소위 ‘판단’을 하는 것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기독인들이 세속의 제도에 따라 위임받은 역할 때문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 이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단순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중략)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중략)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1-7)”
  요컨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니 통치하는 권세에 순종하라는 것, 벌 받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라도 순종하라는 것, 두려워하고 존경하라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활동했던 초대교회의 시대 여건 즉 당시 로마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고려한 조심스러운 언급이라는 해석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면 그게 어디 말씀인가요.
  세상 권세에 대해 예수님이 내놓은 답은 꽤 쿨합니다. 책잡을 구실을 캐내려 예수님을 세속적 이해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옳다고 하든 그르다고 하든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는 교묘한 덫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관의 한계를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편승하거나 반목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수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주어진 객관식 보기를 택하지 않고 예수님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세속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뒤섞지 말라는 대답 앞에 머쓱해진 바리새인들의 벙찐 표정이 떠오릅니다.
  하늘을 바라보되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신앙인으로서 잠시간 가이사의 몫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젠 하나님의 몫을 위해 다시 전념해야 하겠습니다. 바빠서 그랬든 지쳐서 그랬던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파는 그 순간에도 말씀은 끊임없이 뭔가 역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 주의 예배가 그렇고 크고 작은 모임, 행사들이 그렇지요. 당장 내일은 평강의 가게가 열립니다. 좋은 물건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들어와야 할 텐데, 비가 온다거나 너무 춥다거나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준비하고 진행하고 뒷정리하는 요셉들이 많아야 할 텐데, 수익금의 규모와 무관하게 모두가 즐기고 감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텐데 등등 걱정이 많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믿고 맡기는 거죠. 가이사의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든 믿고 맡긴 후 그 결과에 순복하고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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