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7] 소통(疏通)을 위한 기도

원고 2009. 9. 14. 19:57 Posted by 오미크론2
(평강제일교회 요셉선교회 주보 제582호 2009. 6. 7)

  대략 두 돌을 전후하여 아기들은 가장 원초적인 의사소통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은 발음도 불완전하고 억양도 신통찮다. 제대로 못 알아먹는 내용도 태반이다. 부모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통에 아기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제 풀에 지쳐 짜증을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중에 가서야“아, 그거 말하는 거였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발음과 억양이 어지간히 자리를 잡은 후에도, 아이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만만치가 않다. 어른 세대와 비교할 때, 주요 관심사가 다르고 판단의 기준과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옳게 헤아리는 소통(疏通)은 비단 아이와 어른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 큰 성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고민거리다. 처한 형편이 다르고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이해관계가 다르면 상대방의 ‘아’는 내게 ‘어’로 들리고 나의 ‘오’는 상대방에게 ‘우’로 전달되기 쉽다. 하물며, 한 쪽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감정적인 패닉에 빠져 있고, 다른 한 쪽은 지레 내린 판단에 따라 아예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이라면 소통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약 보름 전 토요일 아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분향소를 다녀간 인원만 기백(幾百)만 명에 이르고 노제가 치러진 서울 광장은 노란 물결로 가득 찼다. 일주일의 장의 기간 동안 인터넷과 매스컴은 온통 이 사건에 대한 얘기로 넘쳐났으며, 일부 해외 언론에서도 제법 비중 있게 이를 다뤘다.


  솔직히, 이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재임 당시의 국정 사안 상당수가 즉각적인 호불호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극과 극의 찬반을 불러 일으켰다. 임기 말에는 10%대의 참혹한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최근까지 재기된‘도덕성 의혹’을 생각하면, 그를 마지막까지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추억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의 국민적 애도가 쏟아진 것도 한편으론 이해할만 하다. 고인 앞에선 숙연해지기 마련이고,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대해 나쁜 기억보다 좋은 추억만을 생각하려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일지 모른다. 게다가, 정치인이긴 했으나 그 사람 됨됨이 자체는 결코 정치적이지 못했기에 스스로의 캐릭터를 죽음으로써 완성한 전직 대통령과 그간의 주변 상황을 떠올린다면, 애도의 마음을 갖는 데에 굳이 고인의 열렬한 지지자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죽음은 그런 것일 수 없다. 치료를 요하는 정신적인 질환에 의해서가 아닌 바에야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절대자로부터 주어진 생을 자기 손으로 마감하는 것은 동정받기 어렵다.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결한 의무이다. 하나의 생명이 내포하는 가치는 어떠한 정신적, 이념적 가치보다도 우월하다.‘목적을 위해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태도와‘죽음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는’태도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성경을 봐도 목숨을 내놓고 사역을 감당한 이들은 있을지언정(에스더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다) 제 생명을 목적과 맞바꾼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신앙이 없는 이에게 이런 교훈이 별 의미를 가질 수야 없겠지만 아버지의 준엄한 판단은 신앙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죽음 자체의 동기와 배경이 아니요 그 죽음을 통해 드러난 국민적인 목소리일 것이다. 서민 이미지, 탈 권위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 어쩌면 그것은 서거한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의 한 부분이라기보다, 현 위정자들에게서 보고자 원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답답하고 지친 마음에 끝 모를 한숨을 몰아쉴 때 “아, 이거 말하는 거였지?”하면서 나의 진정을 보듬어주는 부모의 모습을 말이다.


  이래저래 후폭풍이 거세다. 검찰총장은 도의적 책임을 진다며 사표를 제출하였다.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야를 가리지 않으며 대학교수들은 앞 다투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한편 일부 보수층은 ‘체제수호에 자신이 없다면 물러나는 것도 결단’이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가지고 지금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전경과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지럽기 짝이 없다.


  어느 때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도의 기도가 절실하다. 거대한 죽음 앞에 저마다 내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오해나 왜곡 없이 소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일개 교회의 장로가 아니라 한 나라를 이끄는 신령한 장로로서의 사명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어수선함 가운데에도 말씀의 끈을 놓지 않는 성도의 신앙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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