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납세

원고 2013. 8. 3. 05:21 Posted by 오미크론2

제목: 자진납세

해방 이후 근대화, 민주화가 너무 빨리 진행된 부작용이겠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는 퇴임 이후의 삶이 순탄치 않았던 사람이 여럿 된다. 실정(失政)의 책임을 지고 망명길에 오르거나, 내란 수괴 등의 죄목으로 퇴임 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 등의 불명예는 그나마 약과다. 재임 중 측근의 흉탄으로 비명에 가거나, 퇴임 이듬해에 가택 부근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거둔 경우까지 있다.


최근에 부쩍 매스컴에 등장하는 어느 전(前) 대통령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재임 기간 중 뇌물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약 2200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1600억 원 이상이 미납된 상태라고 한다. 추징을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그 복잡한 정치적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시효가 거의 끝나갈 때마다 일부 재산을 압류하여 강제 처분하는 방식으로 추징 시효를 근근이 연장시켜왔던 차에 지난 6월, ‘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명 ‘전OO 추징법’이라 불리는 이 개정안을 통해 추징 시효는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되었고 추징 대상도 본인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 검찰의 추징금 환수 작업은 가속이 붙었고 연희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 자녀들이 소유한 회사와 자택에까지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고가 미술품 등의 재산은 압류되었고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자금 흐름,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 등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드러난 것이 이 정도이니 모르긴 몰라도 주변인 수십 명에게까지 확대된 자금 추적은 정치적으로 볼 때 시쳇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상황이라 하겠다.


불법으로 얻은 자금을 국고로 반납할 의무가 생겼고 이러한 선고 내용을 집행하는 것이라 한층 더 심해진 셈이지만 채무란 것은 이렇듯 원칙적으로 혹독하다. 오죽하면 ‘빚쟁이는 발을 뻗고 잠을 못 잔다’는 속담이 있겠으며 성경은 ‘빚진 자는 종(잠 22:7)’이라고까지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의 기록은 그 강도 면에서 갑(甲)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 은혜를 받았으니 보답해야 한다는 식의 얌전한 표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절박함이 묻어난다. 역시 사도 바울이다.


수련회가 끝났다. 예배의 은혜가 예배자의 마음가짐에 (어느 정도는) 달려 있듯이 이번 수련회를 통해 받은 은혜의 분량도 서로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은혜의 절댓값을 강요받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안의 양심이 옆구리 쿡쿡 찌르고 있음은 인정해야 하겠다. 우리에게, 갚아야 할, 은혜의 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평강제일교회 말씀 사역의 분기점을 이룬 구속사 시리즈가 발간되기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7년째에 접어들었음은 새삼 긴장되는 대목이다. 나의 구속사도 7년째가 맞는가? 정말로?


가진 재능이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이 교회에서 받아 온 은혜가 곧 빚이라 어떤 식으로든 일할 수밖에 없다며 씩 웃던 요셉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비유컨대 누구처럼 ‘내 전재산은 29만 원’이라고 강변하는 요셉도 있을 수 있다, 처지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니까 말이다. 마음은 있으나 그 여건에 들어맞는 사역의 장이 없다면 찾아보자. 찾아도 안 보인다면 조장이나 주위 임원들에게 요청하자, 내 상황이 이러저러한데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겠느냐고. 그런 자리를 찾고 만들어내는 것은 직분자들의 몫이다. 마침, 총회도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임명장을 새로 나눠주는 것이 총회의 전부가 아닐진대 헌신의 자세를 일신(一新)하는 것도 총회를 맞이하는 요셉에게 요구되는 마음가짐이다. 핵심은 채무 변제를 향한 스스로의 의지이다.


자산으로 간주되는 세상의 채무(부채)와 달리, 은혜의 채무는 빨리 갚는 것이 상책이다. 받은 은혜에 상응하는 납세의 의무를 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