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8] 당신의 감사 제목은 무엇인가요?

원고 2009. 9. 14. 19:52 Posted by 오미크론2
(평강제일교회 요셉선교회 주보 제501호 2007. 11. 18)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에 닿자마자 열차가 도착하는 덕분에 간신히 지각을 면하게 되었을 때, 급한 볼일로 화장실에 달려갔는데 마침 딱 한 칸의 빈자리가 나를 위해 남아 있을 때, 조원들에게 안부 문자 돌렸더니만 반갑다는 답문자가 날아올 때, 전 이렇게 읊조립니다. “가암~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 그렇게 자잘한 것에 감동 잘 받는 단순요셉입니다. 어쩌면 극소심한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 좋지 않나요?

  하지만, 어떠한 감사든지 모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성전에 올라온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다죠.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 예수께선 이런 사람을 ‘자기는 의롭고 남을 멸시하는 자’라고 질타하십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면 감사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부족한 사람과 비교해서 감사의 제목을 찾는 것도 옳지 못하단 거죠. 이제까지 해왔던 나의 감사들에도 본의 아니게 이런 비교의 자세가 이따금 있었음을 기억하고 반성합니다.

  즐겁고 기쁜 일, 다행스럽고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습관만 받쳐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감사가 정작 빛을 발하는 순간은 감사 못할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일 겁니다.

  왕 외에 누구에게든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리라는 조서를 보고도 다니엘은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기도하고 감사했다죠(단6:10). 사자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될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다니엘은 도대체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사자굴에 들어가긴 하겠지만 거기서 당연히 구원받을 것을 내다보고 미리 감사한 게 아닐까 합니다. 마치,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에 순순히 아브라함의 칼에 자기를 내맡긴 이삭처럼 말이죠.

  이쯤 되면 ‘배짱’ 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니, 이런 걸 가리켜 ‘믿음’ 이라고 하나 봅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것을, 세상에선 주제넘은 성급함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감사’라는 김칫국이 떡을 부르곤 합니다.

  다니엘의 감사를 압도하는 또 하나의 감사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해하기 쉽도록 요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비록 내 월급은 무성치 못하며 다니는 직장은 비전이 없으며 벌이던 사업에선 수입이 없으며 통장에 잔고가 없으며 집안에 세간이 없을지라도…” 이 와중에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요? 인정합니다. 솔직히 전 자신 없습니다. 역시 선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저 매년 돌아오는 절기인가보다 여기지 말고, 수중의 지폐 몇 장 빼어 습관적으로 봉투에 담아 헌금바구니에 넣지 말고, 나의 ‘감사 제목’ 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찬송가 가사(489장)처럼 나만의 감사 제목을 찬찬히 셈해 봤으면 합니다. 그러는 중에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봉헌했으면 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의 감사 제목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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